"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Napoleon)"에서 맑스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Hegel remarks somewhere that all great world-historic facts and personages appear, so to speak, twice. He forgot to add: the first time as tragedy, the second time as farce."
"헤겔이 어딘가에서 쓰기를, 세계사의 중요한 사실들이나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맑스의 말 중 흔하게 인용되는 내용 중 하나인데, 맑스가 염두에 둔 것은 나폴레옹 1세가 공화정을 뒤엎은 브뤼메르 쿠데타(1799년)와,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1852년)이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박형준 (당시) 대변인이 이 내용을 언급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비판한 바 있다. 즉 97년 대선 당시 이인제씨의 출마가 한나라당에게 비극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또 한 번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희극'이라고 꼬집은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은 두 번 반복되는 것 같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맑스가 말한대로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번은 happy ending이기를 바란다.
@ 2005-08-29
어제는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었다. 한 친구가 골짜기의 백합이
"은방울꽃"의 오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구글링을 좀 해보니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유명한 번역가 정영목씨가 기고했다.
보통 제목에서 오역이 나오면 표지에서 오자가 나오는 것 만큼이나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자크의 소설 가운데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책이 있었다. 영어로는 그 제목이 'Lily of the
Valley'인데, 사실 그 뜻은 '골짜기의 백합'이 아니라 '은방울꽃'이다. 이것은 많은 번역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며
경각심을 자극하는 유명한 오역의 예다(이 경우는 일본어판 오역의 직수입이라는 설도 있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9/np16 ...
Lily
of the Valley는 그 문구 전체가 은방울꽃(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학명은 Convallaria majalis)을 의미한다. "미나리아재비"처럼 말이다. 즉 정영목씨의 말대로라면, "미나리아재비"라고 내가 소설을 썼는데, 영어로 번역된 제목이 "Uncle of 미나리"로 된 셈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오역을 지적하는데 영어제목을 통해 오역을 지적한다. 이 책의 원제는 "Le lys dans la
vallée"이다. 궁금해졌다. 프랑스에서도 저 문구가 과연 은방울꽃을 의미할까?
구글에서 "Lily of the
Valley"를 검색하면 은방울꽃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주루룩 나온다. 그런데 구글에서 "Le lys dans la
vallée"로 검색하면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발자크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프랑스에서 은방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만 같다. '은방울꽃 프랑스'로 구글링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은방울꽃을 뮈게(Muguet)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Muguet. 화장품의 향으로 많이 쓰이는 그 꽃 말이다. Muguet로 이미지를 검색했더니 은방울꽃과 모습이 같다.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면,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뮈게라고도 불리고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불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일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Muguet와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모두
불린다고 하자. 그러면 발자크는 왜 굳이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썼을까? 차라리 다른 꽃을 찾았을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목인데 그런 혼란을 주고 싶었을까?
구글링을 좀 더 해보니, 은방울꽃은
프랑스에서(19세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재는 Muguet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것 같고, "Le lys dans la
vallée"라는 꽃에 대해서는 별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냥 "골짜기에 핀 백합"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즉
'골짜기의 백합'은 오역이 아닐 것 같다는 쪽에 걸고 싶어 진다. 그리고 본문을 읽어보더라도 "골짜기의 백합"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무리는 없다.
이런 것들이 중역의 한계다.
얼마전부터 출처를 찾고 있는 '생각' 하나.
내용인즉슨, 충분한 열정이 없어서 악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악하지 않다는 것이 선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악하지 않다는 것이 그저 악을 행할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그저 게으른 경우에도 우리가 단지 악이 없다고 해서 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사실 우리나라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은' 나라가 절대 아니다. 단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익숙하고, 중국과 일본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 뿐이지, 한국은 '작지' 않다. 적어도 인구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한국의 인구 규모를 본다면, 한국을 일컬어 '좁은 사회'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진다. 적어도 세계적 관점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력 규모를 본다면 마찬가지로 작은 규모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영토의 규모를 따지자면 그리 큰 나라는 아닐 수 있겠지만 현대 세계에서 영토보다는 경제 규모가 중요하고, 또 경제 규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국 인구다.
일단 인구부터 따져보자. 동남아형 인구대국을 제외하기 위해 이른바 잘산다는 나라들의 클럽인 OECD 국가들의 인구 순위를 살펴본다. (단위는 만명)
the United States 30000
Japan 13000
Mexico 10000
Germany 8200
남북한 합치면 여기 (8000)Turkey 7000
France 6400
the United Kingdom 6000
Italy 5900
South Korea 4800Spain 4500
Poland 3800
Canada 3300
Australia 2100
the Netherlands 1600
Greece 1100
Belgium 1000
Portugal 1000
the Czech 1000
Hungary 1000
Sweden 900
Austria 830
Switzerland 750
Denmark 540
Slovakia 540
Finland 530
Norway 470
Ireland 430
New Zealand 420
Luxembourg 46
Iceland 30
위 리스트에서 보듯, 남한만의 규모로도 9위이고 그 앞쪽에 있는 나라들은 과거에 모두 한 '끗발'을 날렸던 나라들이다. 당금의 미제국, 태양의 제국 - 대동아 공영권의 일본, 세계와 맞장떴던 독일 제국, 오토만의 후예 터키,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영제국, 멀리는 로마 가까이는 피렌체-베네치아-제노바의 이탈리아, 멕시코가 좀 예외이지만 나름 아즈텍의 후예들.
이렇게 늘어놓고 비교해보면, 북구의 나라들이 얼마나 '작은' 나라들인지 알 수 있다. 스웨덴 9백만, 핀란드 5백30만, 노르웨이 470만. 이런 걸 감안하면 한국의 모델이 북구가 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지금도 꽤나 그렇지만, 통일이라도 한다치면, 국가의 기본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경제력 규모를 살펴보자. 가장 손쉽게 GDP를 비교해보면 (2007년 월드뱅크 발표 기준, nominal), 미국-일본-독일-중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브라질-러시아-인도-한국-호주-멕시코의 순이다. 우리 앞쪽의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주요한 플레이어였던 국가들이다. 그 나라들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은, 더 처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더 위로 치고 올라가는 일이라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 상황이다.
중국 애들이 랭킹을 좋아하는데 (상해교통대학에서는 전세계 대학 랭킹 같은 것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한다), 2006년 중국의 사회과학원에서는 '종합국력순위'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군사력, 외교력, 기술력, 인적자원, 자본력, 정보통신, 자연자원, 국내 총생산 규모, 정부 조정통제력 등의 국력을 종합고려하는 이 순위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10대 강국은 순서대로 美-英-露-佛-獨-中-日-加-韓-印이다. (GDP와 비교해보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밀려난다. 군사력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통일을 하고 적당히 궤도에 오르면 캐나다보다 위쪽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현재, '작은' 나라도, 힘없는 나라도 아니다. 그만큼 책임있는 상황이고, '작고 힘없는' 나라여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그런 상황은 아닌 것이다. 대략 10~11위권 정도로 감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불편해졌다. 왜 불편해졌을까 생각하면서 "어떤 여행이냐에 따라 다르겠죠"라고 대답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까칠하게 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까칠한 대답이다. 그리고는, 되묻고 싶어졌다.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싫어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혹시 있긴 했냐고. 물론 묻진 않았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가장 흔한 대답은 아마 "색다른 장소의 경험" 또는 결국 이것으로 환원되는 그런 대답들일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여행을 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또는 노는 것)'이나 '돈을 쓰는 것'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이것들이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행'에는 저런 것들이 섞여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해내기 위해서는 분리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여행을 좋아하는 심정의 그 바닥에는 이런 패턴이 깔려 있지 않을까. 일하기 싫다(또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 있다) -> 놀고 싶다 -> 뭐하고 놀지? -> 며칠 걸려 놀만한 것들이 없다! -> 여행 상품을 구매한다 -> 지출의 연속. 소비의 즐거움(이건 마치 즐거운 것처럼 조작되기도 하겠지). 물론 이 패턴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과정들이 축약되어 휴가 -> 여행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 대개의 경우일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를 얻는다는 고상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뭘하고 놀지에 대한 마땅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은 '놀고' 싶은데 여행이라는 것은 목적지라는 레이블만 갈아치우면 되는 아주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있는 것이니 이것을 소비하는(여행시 소비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즐거움이 주된 이유 아닐까.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르고 지루하며 고된 노동 여행을 하라고 한다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얼마나 이 여행을 선택할까?
색다른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다른 장소'의 경험 뿐 아니라 '다른 시간'의 경험(역사 읽기를 통해), 내가 사는 장소 내의 '다른 생활'의 경험, '다른 생각'의 경험(대화 등을 통해)에서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들이다. 물론 여행은 고래로부터 이러한 것들의 '종합 패키지'였다. 다른 장소로 가서 그곳에 새겨진 다른 시간들을 읽고 다른 생활을 경험하고 그곳의 사람들의 다른 생각을 경험하는 그런 패키지 말이다. 그러한 연유로 여행은 장려되어 왔으나 현대의 여행'상품'들이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하는 뒷받침을 얼마나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내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대답한다면, 다른 장소의 경험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른 시간의 경험이나 다른 생활, 다른 생각의 경험에 비해 어떤 특별한 우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며, 이러한 것들이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또한 여행이라는 것을 소비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는 그 시점에 대체가능한 소비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할 것 같다.
* 물론 관심없는 사람들이 '저게 왜 재밌냐?'라고 하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취미들이 있는 것처럼,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을 실행하는 그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 수많은 사람들 곁에서도 결국 인간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여행 상태다.
@ 200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