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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화미남자</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link>
		<description>yongha.</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24 Apr 2009 01:42: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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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심한 들이댐</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30</link>
			<description>수줍은 여자들은 소심하게 들이댄다. 이해는 간다. 대놓고 들이대긴 부담이 따르는 법이지. 어제도 소심한 들이댐을 하나 당했다. 수업에 들어갔는데, 못보던 중국 아가씨가 하나 있길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처음 보면 하는 얘기들이 시작된다. 어디서 왔냐, 뭐 공부하냐, 뭐 이런 것들. &#039;처음 보면 항상 하는 얘기&#039;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가씨가 소심하게 들이댄다. &lt;br /&gt;&lt;br /&gt;&quot;혹시 가족과 함께 왔어?&quot;&lt;br /&gt;&lt;br /&gt;이건 뭐 너무나 명백하게 들이대는 거 아닌가. 마치 집 앞에서 가장 가까웠던 편의점의 아가씨가 보여줬던 그 명백한 태도처럼 말이다. 나는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그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곤 했다. 그때마다 그 아가씨가 있었는데, 얼마나 수줍어하는지, 내 눈을 제대로 못 봤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느라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하곤 했었다. 결국 그 여자는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거둔 것이, 그 여자는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내게 들킬만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심하고 수줍은 아가씨 같으니라구.&lt;br /&gt;&lt;br /&gt;비슷한 일이 몇 주 전에 또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밤 10시쯤 집에 가는 학교 버스를 탔다. 내가 내리는 정류장 바로 전 정류장은 학생들이 우루루 내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버스가 거의 텅비었는데 어떤 예쁜 아가씨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버스는 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살그머니 앉는다. 역시 수줍고 소심한 들이댐이다. 아마도 말 걸어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것에 쉽게 넘어갔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거다. 그 간절함을 애써 외면한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 아가씨가 너무 무안하겠다 싶었다. 그래 그렇게 꼭 창피를 줄 필요는 없지. 혹시나 부끄러움을 못 이겨 오늘밤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이라도 저지른다면? 사람 하나 살리는 셈치고 말을 걸어주기로 했다. 고전적인 걸로다가.&lt;br /&gt;&lt;br /&gt;&quot;저 이번에 내리는데요.&quot;&lt;br /&gt;&lt;br /&gt;마침 버스는 정류장에 거의 다 왔고, 그 아가씨는 수줍게 날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조용히 버스에서 내렸고, 그 아가씨 역시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뒤돌아봐야할까? 에이, 여자애가 용기가 있으면 말을 걸겠지.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결국 그 아가씨는 끝까지 내게 말을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밤에 돌이킬 수 없는 몹쓸 짓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내가 기회를 한 번 줬으니깐.&lt;br /&gt;&lt;br /&gt;여자들은 항상 어찌나 수줍어하던지.&lt;br /&gt;&lt;br /&gt;나한테 끝끝내 자신의 마음을 완벽히 숨겼던, &lt;br /&gt;전혀 아무런 내색도 비치지 못했던 당신들,&lt;br /&gt;난 보기보단 그리 어려운 남자가 아니라구.&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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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Apr 2009 11:46: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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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039;다르다&#039;와 &#039;틀리다&#039;</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9</link>
			<description>@ 2008-11-15 09:38:10&lt;br /&gt;&lt;br /&gt;&#039;다르다&#039;와 &#039;틀리다&#039;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정말 지겹다. 그런데, 이 지겨운 이야기를 정반대로 볼 수도 있다. &lt;br /&gt;&lt;br /&gt;그 지겨운 이야기 중에서 초반부, 즉 우리의 현상을 옮겨와 보면,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서 &#039;다르다&#039;와 &#039;틀리다&#039;는 쉽게 교환하여 사용된다는 것이다.&amp;nbsp; 즉 &#039;다르다&#039;와 &#039;틀리다&#039;가 의미의 지도에서 꽤 붙어 있는 셈이다. 지겹지만 반복해보면, &#039;다른 것&#039;을 &#039;틀린 것&#039;으로 생각하곤 한다는 게 그 &#039;지겨운&#039; 이야기의 요체다. 그런데 그 반대로 볼 수도 있다. 그 둘의 위치가 꽤 붙어 있다는 것은 &#039;틀린 것&#039;을 &#039;다른 것&#039;으로 생각하곤 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lt;br /&gt;&lt;br /&gt;즉 전자의 논의가 그저 다를 뿐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서 &#039;다름&#039;을 &#039;옳고 그름&#039;의 문제로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라면,&amp;nbsp; 후자는 &#039;옮고 그름&#039;의 문제를 &#039;다름&#039;의 문제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amp;nbsp; 후자로 생각하면 전자와는 반대가 된다.&lt;br /&gt;&lt;br /&gt;사실 &#039;다르다&#039;와 &#039;틀리다&#039;가 혼용된다는 것이 어떤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면서도 다르다와 틀리다가 엄격히 구별되는 사회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앞에서의 논의처럼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용이 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도 생각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 사회를 보면서 어떤 외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quot;저 나라에서는 틀리다는 말과 다르다는 말이 잘 구별 안 된대. 저 나라에서는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일 뿐인가봐&quot;)&lt;br /&gt;&lt;br /&gt;*ecily - 뭐 논점과는 관계가 먼 것 같지만, 경험적으로는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용된다기보다 다르다 대신에 틀리다를 쓰는 경우가 많고 그 역의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lt;br /&gt;*anggi - 저 역시. 틀리다 대신에 다르다 쓰는 경우 보기 힘든 것 같아요.&lt;br /&gt;&lt;br /&gt;위의 댓글들에 대해서는, &lt;br /&gt;&lt;br /&gt;말씀들하신 것처럼 틀리다 대신에 다르다를 쓰는 경우는 보기 힘듭니다. 그러면, 틀리다가 다르다를 집어삼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르다가 틀리다로 침투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quot;그건 틀렸습니다!&quot;라고 이야기할 때 &quot;틀린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게 아닐까?&quot;를 생각할 수도 있게 된 거죠. 이건 &quot;틀리다&quot;와 &quot;다르다&quot;가 엄격히 구별될 때는 생기지 않는 일이고요.&lt;br /&gt;&lt;br /&gt;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두 단어의 의미의 이동이 꼭 어느 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쓰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뭐 이런 겁니다.&lt;br /&gt;&lt;br /&gt;</description>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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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9#entry1329comment</comments>
			<pubDate>Wed, 01 Apr 2009 06:37: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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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중요한 것</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8</link>
			<description>女: &quot;남자들은 왜 그러는지 몰라요. 얼굴 예쁜 거 좀만 지나면 시들어 버리는 거고, 그저 겉 껍데기 한 장에 불과한 건데
말이에요. 돈 같은 것도 있다가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없다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전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쉬이
변하지 않는, 그리고 덧없이 사라지지 않는, 그저 피부 한 꺼풀이 아닌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quot;&lt;br /&gt;&lt;br /&gt;男: &quot;예를 들면요?&quo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女:  &quot;키요.&quot;</description>
			<author> (yh)</author>
			<guid>http://sulfide.minamza.net/1328</guid>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8#entry1328comment</comments>
			<pubDate>Wed, 01 Apr 2009 06:28: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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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토론에 대한 오해</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7</link>
			<description>@ 2009-01-10 07:50:26&lt;br /&gt;
&lt;br /&gt;
나는 어떤 사람들은 토론에 대한 오해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lt;br /&gt;
&lt;br /&gt;
그 첫번째 오해는 &#039;논리&#039;가 토론의 결과를 결정짓는다는 믿음이다. 만일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결과를
&#039;논리&#039;에 의해 도출할 수 있다면 그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누가 봐도 참거짓이 분명한 결과들인데 어찌 이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오히려, 양방이 (또는 그 이상의 견해들이) 어느 쪽이 (모든 사람에게)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각각의 견해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면 (즉 내적인 논리적 일관성 정도는
갖춰준다면) &#039;논리&#039;에 의해서는 결정 나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다만 각자의 논리의 전제들이라든가, 문제가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이라든가,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의 한계 (사회 현상들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등이 있을 뿐이고 이러한 전제들과 데이터들을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출발점과
중간지점들에서의 방향 변화가 달라지고 다른 결론을 내어놓는 것이다. 즉 논리적으로 무결한 서로 상반되는 두 서너 대여섯 가지의
주장이 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주장들을 &#039;논리&#039;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다. &lt;br /&gt;
&lt;br /&gt;
두 번째 오해는, 토론이 어느 하나의 결론을 선택하기 위해 행해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토론의 목적을 &#039;승부&#039;와 연관짓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많은 문제들은 어느 한쪽이 옳거나 그르거나하지도 않고, 어느 한쪽이 항상 바람직하거나
하지도 않기 때문에 승부라는 것은 많은 경우에 무의미하다. 물론 어느 한쪽을 주장하고 있는 특정 인물이 그 주장에 대해 &#039;최선의
논리적 구조물&#039;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그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 그 주장의 최선의 논리적 구조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그 방향의 주장이 결함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그 주장의 최선의 논리적 구조물을 축조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물론 &#039;토론경진대회&#039; 따위에서는 이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현재의 경진대회 참여자 중 누가 최선의 논리적 구조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를 가를 수도 있겠지만, &#039;토론경진대회&#039;가 아닌 이상, 그리고 각각의 주장들이 최선을 다했을 때
&#039;논리&#039;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구조물을 가질 수 있다고 자비롭게 가정해준다면, 특정 상대의 논리가 허술하다는 것 자체가 그 방향이
&#039;틀렸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039;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나는 오히려 토론은 승부를 내거나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주장을 더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주장이 무엇을 전제하고,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근거에 기반하는지), 그리고 다른 주장들이 왜 다른지, 어떤
다른 전제를, 효과를,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토론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시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 결론을 위해서는 각자의 주장이 더 명료해져야할 필요가 있고 다른 주장들이 왜 다른지를
알아야한다. 여기에서 토론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고, 그 다음, 즉 하나의 결론이나 승부는 내어도 좋고 안 내어도 좋은 것이라는
것이 나의 토론에 대한 관점이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이러한 토론에 대한 관점이, &#039;결론도 안날 문제에 대해 왜 토론하고 있느냐&#039;에 대한 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description>
			<author> (yh)</author>
			<guid>http://sulfide.minamza.net/1327</guid>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7#entry1327comment</comments>
			<pubDate>Tue, 31 Mar 2009 13:24:5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능력 위주의 사회</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6</link>
			<description>@ 2009-01-24 22:00:05&lt;br /&gt;&lt;br /&gt;&#039;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039;에서, 많은 비율의 사람들은 결국 가난하다.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중 가장 순진한 말은,&lt;br /&gt;&lt;br /&gt;&quot;그럼 너도 부자가 되어라&quot;&lt;br /&gt;&lt;br /&gt;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당연히도 꽤나 강력해서 참 잘 먹힌다. 이 말이 잘 먹히는 동안은 &#039;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039;에서 가난은 자신의 탓이 되어버리고만다. 자신의 피 탓이다. &lt;br /&gt;&lt;br /&gt;부르주아 계층의 귀족에 대한 승리 이후 속한 가문이 지위를 결정하기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보이는 &#039;능력&#039; 위주의 사회가 되었다고는 했다 치자. (물론 여전히 어느 집에서 태어났느냐, 즉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능력과 부과 많은 것을 좌우하지만 자신이 똑똑하면 어느 정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하자) &lt;br /&gt;&lt;br /&gt;그렇다고 한들, 타고난 능력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 속하게 되는 가문과 그리 다를 바는 무엇인가. 능력은 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돕는 능력 있는 사람들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형편이 어려운 귀족을 돕는 귀족들이 다를 바는 또 무엇인가?&lt;br /&gt;&lt;br /&gt;&quot;능력 위주의 사회&quot;라는 것이 귀족 사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점 중 하나는, 사회 전체의 퍼포먼스를 높여서 그 잉여로 인해 가장 가난한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능력 위주의 사회의 정당성은 그 능력 있는 사람들의 부가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가 삶을 낫게 만들어줄 때만 확보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quot;능력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quot;라는 것 자체는 &quot;좋은 피를 타고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quot;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039;능력 있는 사람들&#039;에게는 매우 다르게 들리고 느껴지겠지만.)&lt;br /&gt;&lt;br /&gt;많은 사람들은 &#039;기회의 평등&#039;을 이야기하는데, 좋은 얘기다. 그런데 기회의 평등은 그것으로 만족해야할 가치가 아니라, 최소한 지켜져야할 가치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고 했을 때 능력 있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게 마련이다. 그러면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졌으니 능력 없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사는 것은 그냥 눈감고 넘어가야할 일일까? 누구도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겠지.&lt;br /&gt;&lt;br /&gt;나는 &#039;자비심에서&#039; 누군가를 도와야한다면, 능력은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의지도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도 의지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 이들이 가장 약자들이니까 말이다.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데도 죽도록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는 &#039;자비심&#039;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lt;br /&gt;&lt;br /&gt;</description>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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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6#entry1326comment</comments>
			<pubDate>Tue, 31 Mar 2009 13:19: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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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브뤼메르 18일</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5</link>
			<description>&quot;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Napoleon)&quot;에서 맑스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lt;br /&gt;&lt;blockquote&gt;&lt;br /&gt;&quot;Hegel remarks somewhere that all great world-historic facts and personages appear, so to speak, twice. He forgot to add: the first time as tragedy, the second time as farce.&quot;&lt;br /&gt;&lt;br /&gt;&quot;헤겔이 어딘가에서 쓰기를, 세계사의 중요한 사실들이나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quot;&lt;/blockquote&gt;&lt;br /&gt;&lt;br /&gt;맑스의 말 중 흔하게 인용되는 내용 중 하나인데, 맑스가 염두에 둔 것은 나폴레옹 1세가 공화정을 뒤엎은 브뤼메르 쿠데타(1799년)와,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1852년)이었다. &lt;br /&gt;&lt;br /&gt;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박형준 (당시) 대변인이 이 내용을 언급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비판한 바 있다. 즉 97년 대선 당시 이인제씨의 출마가 한나라당에게 비극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또 한 번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039;희극&#039;이라고 꼬집은 것이었다.&lt;br /&gt;&lt;br /&gt;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은 두 번 반복되는 것 같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맑스가 말한대로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번은 happy ending이기를 바란다.&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삶</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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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5#entry1325comment</comments>
			<pubDate>Sun, 29 Jun 2008 06:31:56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골짜기의 백합</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4</link>
			<description>&lt;br /&gt;@ 2005-08-29&lt;br /&gt;&lt;br /&gt;어제는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었다. 한 친구가 골짜기의 백합이
&quot;은방울꽃&quot;의 오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구글링을 좀 해보니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유명한 번역가 정영목씨가 기고했다.&lt;br /&gt;&lt;br /&gt;&lt;blockquote&gt;&lt;br /&gt;보통 제목에서 오역이 나오면 표지에서 오자가 나오는 것 만큼이나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자크의 소설 가운데 &#039;골짜기의 백합&#039;이라는 책이 있었다. 영어로는 그 제목이 &#039;Lily of the
Valley&#039;인데, 사실 그 뜻은 &#039;골짜기의 백합&#039;이 아니라 &#039;은방울꽃&#039;이다. 이것은 많은 번역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며
경각심을 자극하는 유명한 오역의 예다(이 경우는 일본어판 오역의 직수입이라는 설도 있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lt;a href=&quot;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9/np169ii010.html&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9/np16 ...&lt;/a&gt;&lt;br /&gt;&lt;/blockquote&gt;&lt;br /&gt;Lily
of the Valley는 그 문구 전체가 은방울꽃(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학명은 Convallaria majalis)을 의미한다. &quot;미나리아재비&quot;처럼 말이다. 즉 정영목씨의 말대로라면, &quot;미나리아재비&quot;라고 내가 소설을 썼는데, 영어로 번역된 제목이 &quot;Uncle of 미나리&quot;로 된 셈이다.
&lt;br /&gt;&lt;br /&gt;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오역을 지적하는데 영어제목을 통해 오역을 지적한다. 이 책의 원제는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이다. 궁금해졌다. 프랑스에서도 저 문구가 과연 은방울꽃을 의미할까? &lt;br /&gt;&lt;br /&gt;구글에서 &quot;Lily of the
Valley&quot;를 검색하면 은방울꽃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주루룩 나온다. 그런데 구글에서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로 검색하면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발자크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lt;br /&gt;&lt;br /&gt;프랑스에서 은방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만 같다. &#039;은방울꽃 프랑스&#039;로 구글링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은방울꽃을 뮈게(Muguet)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Muguet. 화장품의 향으로 많이 쓰이는 그 꽃 말이다. Muguet로 이미지를 검색했더니 은방울꽃과 모습이 같다. &lt;br /&gt;&lt;br /&gt;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면,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뮈게라고도 불리고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불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일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Muguet와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모두
불린다고 하자. 그러면 발자크는 왜 굳이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썼을까? 차라리 다른 꽃을 찾았을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목인데 그런 혼란을 주고 싶었을까? &lt;br /&gt;&lt;br /&gt;구글링을 좀 더 해보니, 은방울꽃은
프랑스에서(19세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재는 Muguet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것 같고,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라는 꽃에 대해서는 별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냥 &quot;골짜기에 핀 백합&quot;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즉
&#039;골짜기의 백합&#039;은 오역이 아닐 것 같다는 쪽에 걸고 싶어 진다. 그리고 본문을 읽어보더라도 &quot;골짜기의 백합&quot;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무리는 없다.&lt;br /&gt;&lt;br /&gt;이런 것들이 중역의 한계다.&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기타</category>
			<author> (yh)</author>
			<guid>http://sulfide.minamza.net/1324</guid>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24#entry1324comment</comments>
			<pubDate>Thu, 26 Jun 2008 11:30:2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악의 부재</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3</link>
			<description>얼마전부터 출처를 찾고 있는 &#039;생각&#039; 하나.&lt;br /&gt;&lt;br /&gt;내용인즉슨, 충분한 열정이 없어서 악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악하지 않다는 것이 선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악하지 않다는 것이 그저 악을 행할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그저 게으른 경우에도 우리가 단지 악이 없다고 해서 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기타</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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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Jun 2008 16:03: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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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은 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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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사실 우리나라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039;작은&#039; 나라가 절대 아니다. 단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익숙하고, 중국과 일본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 뿐이지, 한국은 &#039;작지&#039; 않다. 적어도 인구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한국의 인구 규모를 본다면, 한국을 일컬어 &#039;좁은 사회&#039;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진다. 적어도 세계적 관점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력 규모를 본다면 마찬가지로 작은 규모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영토의 규모를 따지자면 그리 큰 나라는 아닐 수 있겠지만 현대 세계에서 영토보다는 경제 규모가 중요하고, 또 경제 규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국 인구다. &lt;br /&gt;&lt;br /&gt;일단 인구부터 따져보자. 동남아형 인구대국을 제외하기 위해 이른바 잘산다는 나라들의 클럽인 OECD 국가들의 인구 순위를 살펴본다. (단위는 만명)&lt;br /&gt;&lt;br /&gt;&lt;br /&gt;the United States &amp;nbsp;&amp;nbsp; 30000&lt;br /&gt;Japan &amp;nbsp;&amp;nbsp; 13000&lt;br /&gt;Mexico &amp;nbsp; &amp;nbsp; 10000&lt;br /&gt;Germany &amp;nbsp;&amp;nbsp; 8200&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color: rgb(142, 142, 142);&quot;&gt;남북한 합치면 여기 (8000)&lt;/span&gt;&lt;br /&gt;Turkey &amp;nbsp;&amp;nbsp; 7000&lt;br /&gt;France &amp;nbsp;&amp;nbsp; 6400&lt;br /&gt;the United Kingdom &amp;nbsp;&amp;nbsp; 6000&lt;br /&gt;Italy &amp;nbsp;&amp;nbsp; 5900&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South Korea &amp;nbsp; &amp;nbsp; 4800&lt;/span&gt;&lt;br /&gt;Spain &amp;nbsp;&amp;nbsp; 4500&lt;br /&gt;Poland &amp;nbsp;&amp;nbsp; 3800&lt;br /&gt;Canada &amp;nbsp;&amp;nbsp; 3300&lt;br /&gt;Australia &amp;nbsp; &amp;nbsp; 2100&lt;br /&gt;the Netherlands &amp;nbsp;&amp;nbsp; 1600&lt;br /&gt;Greece &amp;nbsp;&amp;nbsp; 1100&lt;br /&gt;Belgium &amp;nbsp;&amp;nbsp; 1000&lt;br /&gt;Portugal &amp;nbsp;&amp;nbsp; 1000&lt;br /&gt;the Czech &amp;nbsp; &amp;nbsp; 1000&lt;br /&gt;Hungary &amp;nbsp;&amp;nbsp; 1000&lt;br /&gt;Sweden &amp;nbsp;&amp;nbsp; 900&lt;br /&gt;Austria &amp;nbsp;&amp;nbsp; 830&lt;br /&gt;Switzerland &amp;nbsp;&amp;nbsp; 750&lt;br /&gt;Denmark &amp;nbsp;&amp;nbsp; 540&lt;br /&gt;Slovakia &amp;nbsp;&amp;nbsp; 540&lt;br /&gt;Finland &amp;nbsp; &amp;nbsp; 530&lt;br /&gt;Norway &amp;nbsp;&amp;nbsp; 470&lt;br /&gt;Ireland &amp;nbsp;&amp;nbsp; 430&lt;br /&gt;New Zealand &amp;nbsp; &amp;nbsp; 420&lt;br /&gt;Luxembourg &amp;nbsp;&amp;nbsp; 46&lt;br /&gt;Iceland &amp;nbsp;&amp;nbsp; 30&lt;br /&gt;&lt;br /&gt;위 리스트에서 보듯, 남한만의 규모로도 9위이고 그 앞쪽에 있는 나라들은 과거에 모두 한 &#039;끗발&#039;을 날렸던 나라들이다. 당금의 미제국, 태양의 제국 - 대동아 공영권의 일본, 세계와 맞장떴던 독일 제국, 오토만의 후예 터키,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영제국, 멀리는 로마 가까이는 피렌체-베네치아-제노바의 이탈리아, 멕시코가 좀 예외이지만 나름 아즈텍의 후예들.&lt;br /&gt;&lt;br /&gt;이렇게 늘어놓고 비교해보면, 북구의 나라들이 얼마나 &#039;작은&#039; 나라들인지 알 수 있다. 스웨덴 9백만, 핀란드 5백30만, 노르웨이 470만. 이런 걸 감안하면 한국의 모델이 북구가 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지금도 꽤나 그렇지만, 통일이라도 한다치면, 국가의 기본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lt;br /&gt;&lt;br /&gt;경제력 규모를 살펴보자. 가장 손쉽게 GDP를 비교해보면 (2007년 월드뱅크 발표 기준, nominal), 미국-일본-독일-중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브라질-러시아-인도-한국-호주-멕시코의 순이다. 우리 앞쪽의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주요한 플레이어였던 국가들이다. 그 나라들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은, 더 처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더 위로 치고 올라가는 일이라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 상황이다. &lt;br /&gt;&lt;br /&gt;중국 애들이 랭킹을 좋아하는데 (상해교통대학에서는 전세계 대학 랭킹 같은 것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한다), 2006년 중국의 사회과학원에서는 &#039;종합국력순위&#039;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lt;font style=&quot;font-family: &#039;Dotum&#039;,&#039;Sans-serif&#039;; color: rgb(0, 0, 0);&quot; size=&quot;1&quot; face=&quot;굴림&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line-height: 16px; text-align: justify;&quot;&gt;군사력, 외교력, 기술력, 인적자원, 자본력, 정보통신, 자연자원,&lt;/span&gt;&lt;/font&gt;&lt;font size=&quot;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line-height: 16px; text-align: justify;&quot;&gt; 국내 총생산 규모, 정부 조정통제력&lt;/span&gt;&lt;/font&gt; 등의 국력을 종합고려하는 이 순위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10대 강국은 순서대로 美-英-露-佛-獨-中-日-加-韓-印이다. (GDP와 비교해보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밀려난다. 군사력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통일을 하고 적당히 궤도에 오르면 캐나다보다 위쪽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기도 하다.)&lt;br /&gt;&lt;br /&gt;이렇게 보면, 한국은 현재, &#039;작은&#039; 나라도, 힘없는 나라도 아니다. 그만큼 책임있는 상황이고, &#039;작고 힘없는&#039; 나라여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그런 상황은 아닌 것이다. 대략 10~11위권 정도로 감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시사</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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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Jun 2008 16:47: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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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을 좋아하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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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오늘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불편해졌다. 왜 불편해졌을까 생각하면서 &quot;어떤 여행이냐에 따라 다르겠죠&quot;라고 대답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까칠하게 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까칠한 대답이다. 그리고는, 되묻고 싶어졌다.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싫어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혹시 있긴 했냐고. 물론 묻진 않았다.&lt;br /&gt;&lt;br /&gt;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가장 흔한 대답은 아마 &quot;색다른 장소의 경험&quot; 또는 결국 이것으로 환원되는 그런 대답들일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039;여행을 하는 것&#039;과 &#039;일하지 않는 것(또는 노는 것)&#039;이나 &#039;돈을 쓰는 것&#039;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이것들이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우리가 보통 말하는 &#039;여행&#039;에는 저런 것들이 섞여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039;여행&#039;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해내기 위해서는 분리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lt;br /&gt;&lt;br /&gt;아마도 여행을 좋아하는 심정의 그 바닥에는 이런 패턴이 깔려 있지 않을까. 일하기 싫다(또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 있다) -&amp;gt; 놀고 싶다 -&amp;gt; 뭐하고 놀지? -&amp;gt; 며칠 걸려 놀만한 것들이 없다! -&amp;gt; 여행 상품을 구매한다 -&amp;gt; 지출의 연속. 소비의 즐거움(이건 마치 즐거운 것처럼 조작되기도 하겠지). 물론 이 패턴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과정들이 축약되어 휴가 -&amp;gt; 여행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 대개의 경우일 것이다. &lt;br /&gt;&lt;br /&gt;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를 얻는다는 고상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amp;nbsp; 뭘하고 놀지에 대한 마땅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은 &#039;놀고&#039; 싶은데 여행이라는 것은 목적지라는 레이블만 갈아치우면 되는 아주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있는 것이니 이것을 소비하는(여행시 소비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즐거움이 주된 이유 아닐까.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르고 지루하며 고된 노동 여행을 하라고 한다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얼마나 이 여행을 선택할까?&lt;br /&gt;&lt;br /&gt;색다른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039;다른 장소&#039;의 경험 뿐 아니라 &#039;다른 시간&#039;의 경험(역사 읽기를 통해), 내가 사는 장소 내의 &#039;다른 생활&#039;의 경험, &#039;다른 생각&#039;의 경험(대화 등을 통해)에서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들이다. 물론 여행은 고래로부터 이러한 것들의 &#039;종합 패키지&#039;였다. 다른 장소로 가서 그곳에 새겨진 다른 시간들을 읽고 다른 생활을 경험하고 그곳의 사람들의 다른 생각을 경험하는 그런 패키지 말이다. 그러한 연유로 여행은 장려되어 왔으나 현대의 여행&#039;상품&#039;들이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하는 뒷받침을 얼마나 하는지는 의문이다.&lt;br /&gt;&lt;br /&gt;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내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대답한다면, 다른 장소의 경험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른 시간의 경험이나 다른 생활, 다른 생각의 경험에 비해 어떤 특별한 우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며, 이러한 것들이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또한 여행이라는 것을 소비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는 그 시점에 대체가능한 소비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할 것 같다.&lt;br /&gt;&lt;br /&gt;* 물론 관심없는 사람들이 &#039;저게 왜 재밌냐?&#039;라고 하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취미들이 있는 것처럼,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을 실행하는 그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lt;br /&gt;&lt;br /&gt;* 수많은 사람들 곁에서도 결국 인간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여행 상태다.&lt;br /&gt;&lt;br /&gt;@ 2006-08-20&lt;br /&gt;</description>
			<category>삶</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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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Jun 2008 14:44: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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