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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화미남자</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link>
		<description>yongha.</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30 Jun 2008 14:13: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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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브뤼메르 18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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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quot;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Napoleon)&quot;에서 맑스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lt;br /&gt;&lt;blockquote&gt;&lt;br /&gt;&quot;Hegel remarks somewhere that all great world-historic facts and personages appear, so to speak, twice. He forgot to add: the first time as tragedy, the second time as farce.&quot;&lt;br /&gt;&lt;br /&gt;&quot;헤겔이 어딘가에서 쓰기를, 세계사의 중요한 사실들이나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quot;&lt;/blockquote&gt;&lt;br /&gt;&lt;br /&gt;맑스의 말 중 흔하게 인용되는 내용 중 하나인데, 맑스가 염두에 둔 것은 나폴레옹 1세가 공화정을 뒤엎은 브뤼메르 쿠데타(1799년)와,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1852년)이었다. &lt;br /&gt;&lt;br /&gt;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박형준 (당시) 대변인이 이 내용을 언급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비판한 바 있다. 즉 97년 대선 당시 이인제씨의 출마가 한나라당에게 비극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또 한 번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며 이회창씨의 출마를 &#039;희극&#039;이라고 꼬집은 것이었다.&lt;br /&gt;&lt;br /&gt;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은 두 번 반복되는 것 같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맑스가 말한대로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번은 happy ending이기를 바란다.&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삶</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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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9 Jun 2008 06:31: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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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골짜기의 백합</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4</link>
			<description>&lt;br /&gt;@ 2005-08-29&lt;br /&gt;&lt;br /&gt;어제는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었다. 한 친구가 골짜기의 백합이
&quot;은방울꽃&quot;의 오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구글링을 좀 해보니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유명한 번역가 정영목씨가 기고했다.&lt;br /&gt;&lt;br /&gt;&lt;blockquote&gt;&lt;br /&gt;보통 제목에서 오역이 나오면 표지에서 오자가 나오는 것 만큼이나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자크의 소설 가운데 &#039;골짜기의 백합&#039;이라는 책이 있었다. 영어로는 그 제목이 &#039;Lily of the
Valley&#039;인데, 사실 그 뜻은 &#039;골짜기의 백합&#039;이 아니라 &#039;은방울꽃&#039;이다. 이것은 많은 번역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며
경각심을 자극하는 유명한 오역의 예다(이 경우는 일본어판 오역의 직수입이라는 설도 있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lt;a href=&quot;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9/np169ii010.html&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69/np16 ...&lt;/a&gt;&lt;br /&gt;&lt;/blockquote&gt;&lt;br /&gt;Lily
of the Valley는 그 문구 전체가 은방울꽃(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학명은 Convallaria majalis)을 의미한다. &quot;미나리아재비&quot;처럼 말이다. 즉 정영목씨의 말대로라면, &quot;미나리아재비&quot;라고 내가 소설을 썼는데, 영어로 번역된 제목이 &quot;Uncle of 미나리&quot;로 된 셈이다.
&lt;br /&gt;&lt;br /&gt;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오역을 지적하는데 영어제목을 통해 오역을 지적한다. 이 책의 원제는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이다. 궁금해졌다. 프랑스에서도 저 문구가 과연 은방울꽃을 의미할까? &lt;br /&gt;&lt;br /&gt;구글에서 &quot;Lily of the
Valley&quot;를 검색하면 은방울꽃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주루룩 나온다. 그런데 구글에서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로 검색하면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발자크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lt;br /&gt;&lt;br /&gt;프랑스에서 은방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만 같다. &#039;은방울꽃 프랑스&#039;로 구글링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은방울꽃을 뮈게(Muguet)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Muguet. 화장품의 향으로 많이 쓰이는 그 꽃 말이다. Muguet로 이미지를 검색했더니 은방울꽃과 모습이 같다. &lt;br /&gt;&lt;br /&gt;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면,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뮈게라고도 불리고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불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일 은방울꽃이 프랑스에서 Muguet와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모두
불린다고 하자. 그러면 발자크는 왜 굳이 Le lys dans la vallée라고 썼을까? 차라리 다른 꽃을 찾았을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목인데 그런 혼란을 주고 싶었을까? &lt;br /&gt;&lt;br /&gt;구글링을 좀 더 해보니, 은방울꽃은
프랑스에서(19세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재는 Muguet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것 같고, &quot;Le lys dans la
vallée&quot;라는 꽃에 대해서는 별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냥 &quot;골짜기에 핀 백합&quot;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즉
&#039;골짜기의 백합&#039;은 오역이 아닐 것 같다는 쪽에 걸고 싶어 진다. 그리고 본문을 읽어보더라도 &quot;골짜기의 백합&quot;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무리는 없다.&lt;br /&gt;&lt;br /&gt;이런 것들이 중역의 한계다.&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기타</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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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Jun 2008 11:30: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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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악의 부재</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3</link>
			<description>얼마전부터 출처를 찾고 있는 &#039;생각&#039; 하나.&lt;br /&gt;&lt;br /&gt;내용인즉슨, 충분한 열정이 없어서 악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악하지 않다는 것이 선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악하지 않다는 것이 그저 악을 행할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그저 게으른 경우에도 우리가 단지 악이 없다고 해서 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기타</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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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Jun 2008 16:03: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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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은 나라?</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2</link>
			<description>사실 우리나라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039;작은&#039; 나라가 절대 아니다. 단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익숙하고, 중국과 일본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 뿐이지, 한국은 &#039;작지&#039; 않다. 적어도 인구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한국의 인구 규모를 본다면, 한국을 일컬어 &#039;좁은 사회&#039;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진다. 적어도 세계적 관점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력 규모를 본다면 마찬가지로 작은 규모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영토의 규모를 따지자면 그리 큰 나라는 아닐 수 있겠지만 현대 세계에서 영토보다는 경제 규모가 중요하고, 또 경제 규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국 인구다. &lt;br /&gt;&lt;br /&gt;일단 인구부터 따져보자. 동남아형 인구대국을 제외하기 위해 이른바 잘산다는 나라들의 클럽인 OECD 국가들의 인구 순위를 살펴본다. (단위는 만명)&lt;br /&gt;&lt;br /&gt;&lt;br /&gt;the United States &amp;nbsp;&amp;nbsp; 30000&lt;br /&gt;Japan &amp;nbsp;&amp;nbsp; 13000&lt;br /&gt;Mexico &amp;nbsp; &amp;nbsp; 10000&lt;br /&gt;Germany &amp;nbsp;&amp;nbsp; 8200&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color: rgb(142, 142, 142);&quot;&gt;남북한 합치면 여기 (8000)&lt;/span&gt;&lt;br /&gt;Turkey &amp;nbsp;&amp;nbsp; 7000&lt;br /&gt;France &amp;nbsp;&amp;nbsp; 6400&lt;br /&gt;the United Kingdom &amp;nbsp;&amp;nbsp; 6000&lt;br /&gt;Italy &amp;nbsp;&amp;nbsp; 5900&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South Korea &amp;nbsp; &amp;nbsp; 4800&lt;/span&gt;&lt;br /&gt;Spain &amp;nbsp;&amp;nbsp; 4500&lt;br /&gt;Poland &amp;nbsp;&amp;nbsp; 3800&lt;br /&gt;Canada &amp;nbsp;&amp;nbsp; 3300&lt;br /&gt;Australia &amp;nbsp; &amp;nbsp; 2100&lt;br /&gt;the Netherlands &amp;nbsp;&amp;nbsp; 1600&lt;br /&gt;Greece &amp;nbsp;&amp;nbsp; 1100&lt;br /&gt;Belgium &amp;nbsp;&amp;nbsp; 1000&lt;br /&gt;Portugal &amp;nbsp;&amp;nbsp; 1000&lt;br /&gt;the Czech &amp;nbsp; &amp;nbsp; 1000&lt;br /&gt;Hungary &amp;nbsp;&amp;nbsp; 1000&lt;br /&gt;Sweden &amp;nbsp;&amp;nbsp; 900&lt;br /&gt;Austria &amp;nbsp;&amp;nbsp; 830&lt;br /&gt;Switzerland &amp;nbsp;&amp;nbsp; 750&lt;br /&gt;Denmark &amp;nbsp;&amp;nbsp; 540&lt;br /&gt;Slovakia &amp;nbsp;&amp;nbsp; 540&lt;br /&gt;Finland &amp;nbsp; &amp;nbsp; 530&lt;br /&gt;Norway &amp;nbsp;&amp;nbsp; 470&lt;br /&gt;Ireland &amp;nbsp;&amp;nbsp; 430&lt;br /&gt;New Zealand &amp;nbsp; &amp;nbsp; 420&lt;br /&gt;Luxembourg &amp;nbsp;&amp;nbsp; 46&lt;br /&gt;Iceland &amp;nbsp;&amp;nbsp; 30&lt;br /&gt;&lt;br /&gt;위 리스트에서 보듯, 남한만의 규모로도 9위이고 그 앞쪽에 있는 나라들은 과거에 모두 한 &#039;끗발&#039;을 날렸던 나라들이다. 당금의 미제국, 태양의 제국 - 대동아 공영권의 일본, 세계와 맞장떴던 독일 제국, 오토만의 후예 터키,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영제국, 멀리는 로마 가까이는 피렌체-베네치아-제노바의 이탈리아, 멕시코가 좀 예외이지만 나름 아즈텍의 후예들.&lt;br /&gt;&lt;br /&gt;이렇게 늘어놓고 비교해보면, 북구의 나라들이 얼마나 &#039;작은&#039; 나라들인지 알 수 있다. 스웨덴 9백만, 핀란드 5백30만, 노르웨이 470만. 이런 걸 감안하면 한국의 모델이 북구가 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지금도 꽤나 그렇지만, 통일이라도 한다치면, 국가의 기본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lt;br /&gt;&lt;br /&gt;경제력 규모를 살펴보자. 가장 손쉽게 GDP를 비교해보면 (2007년 월드뱅크 발표 기준, nominal), 미국-일본-독일-중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브라질-러시아-인도-한국-호주-멕시코의 순이다. 우리 앞쪽의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주요한 플레이어였던 국가들이다. 그 나라들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은, 더 처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더 위로 치고 올라가는 일이라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 상황이다. &lt;br /&gt;&lt;br /&gt;중국 애들이 랭킹을 좋아하는데 (상해교통대학에서는 전세계 대학 랭킹 같은 것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한다), 2006년 중국의 사회과학원에서는 &#039;종합국력순위&#039;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lt;font style=&quot;font-family: &#039;Dotum&#039;,&#039;Sans-serif&#039;; color: rgb(0, 0, 0);&quot; size=&quot;1&quot; face=&quot;굴림&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line-height: 16px; text-align: justify;&quot;&gt;군사력, 외교력, 기술력, 인적자원, 자본력, 정보통신, 자연자원,&lt;/span&gt;&lt;/font&gt;&lt;font size=&quot;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line-height: 16px; text-align: justify;&quot;&gt; 국내 총생산 규모, 정부 조정통제력&lt;/span&gt;&lt;/font&gt; 등의 국력을 종합고려하는 이 순위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10대 강국은 순서대로 美-英-露-佛-獨-中-日-加-韓-印이다. (GDP와 비교해보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밀려난다. 군사력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통일을 하고 적당히 궤도에 오르면 캐나다보다 위쪽으로 자리잡게 될 것 같기도 하다.)&lt;br /&gt;&lt;br /&gt;이렇게 보면, 한국은 현재, &#039;작은&#039; 나라도, 힘없는 나라도 아니다. 그만큼 책임있는 상황이고, &#039;작고 힘없는&#039; 나라여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그런 상황은 아닌 것이다. 대략 10~11위권 정도로 감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시사</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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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Jun 2008 16:47: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여행을 좋아하세요?</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20</link>
			<description>오늘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불편해졌다. 왜 불편해졌을까 생각하면서 &quot;어떤 여행이냐에 따라 다르겠죠&quot;라고 대답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까칠하게 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까칠한 대답이다. 그리고는, 되묻고 싶어졌다.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싫어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혹시 있긴 했냐고. 물론 묻진 않았다.&lt;br /&gt;&lt;br /&gt;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가장 흔한 대답은 아마 &quot;색다른 장소의 경험&quot; 또는 결국 이것으로 환원되는 그런 대답들일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039;여행을 하는 것&#039;과 &#039;일하지 않는 것(또는 노는 것)&#039;이나 &#039;돈을 쓰는 것&#039;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이것들이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우리가 보통 말하는 &#039;여행&#039;에는 저런 것들이 섞여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039;여행&#039;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해내기 위해서는 분리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lt;br /&gt;&lt;br /&gt;아마도 여행을 좋아하는 심정의 그 바닥에는 이런 패턴이 깔려 있지 않을까. 일하기 싫다(또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 있다) -&amp;gt; 놀고 싶다 -&amp;gt; 뭐하고 놀지? -&amp;gt; 며칠 걸려 놀만한 것들이 없다! -&amp;gt; 여행 상품을 구매한다 -&amp;gt; 지출의 연속. 소비의 즐거움(이건 마치 즐거운 것처럼 조작되기도 하겠지). 물론 이 패턴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과정들이 축약되어 휴가 -&amp;gt; 여행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 대개의 경우일 것이다. &lt;br /&gt;&lt;br /&gt;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를 얻는다는 고상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amp;nbsp; 뭘하고 놀지에 대한 마땅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은 &#039;놀고&#039; 싶은데 여행이라는 것은 목적지라는 레이블만 갈아치우면 되는 아주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있는 것이니 이것을 소비하는(여행시 소비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즐거움이 주된 이유 아닐까.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르고 지루하며 고된 노동 여행을 하라고 한다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얼마나 이 여행을 선택할까?&lt;br /&gt;&lt;br /&gt;색다른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039;다른 장소&#039;의 경험 뿐 아니라 &#039;다른 시간&#039;의 경험(역사 읽기를 통해), 내가 사는 장소 내의 &#039;다른 생활&#039;의 경험, &#039;다른 생각&#039;의 경험(대화 등을 통해)에서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들이다. 물론 여행은 고래로부터 이러한 것들의 &#039;종합 패키지&#039;였다. 다른 장소로 가서 그곳에 새겨진 다른 시간들을 읽고 다른 생활을 경험하고 그곳의 사람들의 다른 생각을 경험하는 그런 패키지 말이다. 그러한 연유로 여행은 장려되어 왔으나 현대의 여행&#039;상품&#039;들이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하는 뒷받침을 얼마나 하는지는 의문이다.&lt;br /&gt;&lt;br /&gt;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내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대답한다면, 다른 장소의 경험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른 시간의 경험이나 다른 생활, 다른 생각의 경험에 비해 어떤 특별한 우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며, 이러한 것들이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또한 여행이라는 것을 소비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는 그 시점에 대체가능한 소비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할 것 같다.&lt;br /&gt;&lt;br /&gt;* 물론 관심없는 사람들이 &#039;저게 왜 재밌냐?&#039;라고 하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취미들이 있는 것처럼,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을 실행하는 그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lt;br /&gt;&lt;br /&gt;* 수많은 사람들 곁에서도 결국 인간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여행 상태다.&lt;br /&gt;&lt;br /&gt;@ 2006-08-20&lt;br /&gt;</description>
			<category>삶</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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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Jun 2008 14:44:2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 시대의 신</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19</link>
			<description>&lt;br /&gt;&lt;br /&gt;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종교는 (적어도 &#039;문명&#039; 사회에서는) &#039;가족&#039;이 아닐까. 공공연히 가족을 경시하거나, &#039;난 가족따윈 필요없어&#039;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발붙이지 못한다. &quot;난 가족들 별로 안 좋아해요&quot;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교자들은 이 종교에 지극히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묘사된다. TV, 신문, 영화 등의 나팔수들은 끊임없이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때로는 해체되어가는 가정을 그리면서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한다. &lt;br /&gt;&lt;br /&gt;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족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며, 가족애는 항상 아름답다. 가족근본주의자들과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대체 무엇이 다른가. 가족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과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lt;br /&gt;&lt;br /&gt;물론 때로는 불경한 사람들이 있지만 조용히 마이너리티로 살아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lt;br /&gt;&lt;br /&gt;@ 2007-04-19 &lt;br /&gt;</description>
			<category>시사</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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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19#entry1319comment</comments>
			<pubDate>Sun, 22 Jun 2008 14:27: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울지 마</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18</link>
			<description>어렸을 때 어머니께 가끔 맞곤 했다. 애들이 다 할 법한 시시콜콜한 이유로 맞곤 했는데, 맞다보면 울게 된다. 그렇게 우는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뭘 잘했다고 우냐며 울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물론 말씀만 하신게 아니라 &quot;그만 안 울어?&quot;하면서 때리기도 하셨다. 험한 분위기 같지만, 사내 넷을 키우다보면 그러기 십상일 법하다. &lt;br /&gt;&lt;br /&gt;사실 울지 않게 하려면 안 때렸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맞을 일은 저질렀고, 그래서 때렸는데, 우는 것은 보기 싫은 것이고 마음 아픈 것이다. 그러니 울도록 때리곤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lt;br /&gt;&lt;br /&gt;울음의 원인 제공자 역시 어지간한 경우에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우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때린 사람이 다리 못 뻗고 잔다면, 맞은 사람은 이 다리가 내 다린지 남의 다린지도 모를 지경이다.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면 울리지 않았으면 되는 일이었잖니. 울게&amp;nbsp; 만들었으면 울지 말라고는 하지 말자. &lt;br /&gt;&lt;br /&gt;울지 않으면, 가슴이 구멍이 뚫리고, 그 동굴에서 종유석이 자란다. 그리고 그 종유석은 자라서 속살을 치받는다. &lt;br /&gt;&lt;br /&gt;@2007-06-14&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련애</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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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18#entry1318comment</comments>
			<pubDate>Sun, 22 Jun 2008 14:09: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무근유죄</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17</link>
			<description>&lt;br /&gt;&lt;br /&gt;* 대체역사 SF&lt;br /&gt;&lt;br /&gt;&quot;자본가를 착취하는 다국적 노조는 물러가라!&quot;&lt;br /&gt;&lt;br /&gt;건이는 이제 그런 문구에 가슴뛸 나이가 지났다. &lt;br /&gt;&lt;br /&gt;건이는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등도 구부정하고 얼굴은 허얬으며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아버지는 내게 왜 근력을 물려주지 못했을까. 나도 노조위원장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튼튼한 두 다리와, 억센 손, 햇빛에 노출되어도 따끔거리지 않는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을텐데. 우리 아버지가 물려준 거라곤 그저 돈 뿐이었다. 그 돈으로 하루하루 연명할 쌀을 구해와야했다. 아버지는 매일매일 돈을 팔러 다녔다. 제 돈 좀 써주세요. 비굴하게 노동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했다. 아버지는 설탕 노동자에게, 섬유 노동자에게 매일매일 자신의 돈을 팔아 이자를 마련해왔고, 그것으로 쌀을 샀다. 그놈의 근육이 뭔지. 근육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였다.&lt;br /&gt;&lt;br /&gt;돈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돈 쓰라는 사람은 많았고, 원하는대로 골라 잡으면 그만이었다. 자본가들은 단결하지 못했고, 용케 단결한다손치더라도 다국적 노조는 마음에 안들면 돈이 풍부한 제3세계로 언제든지 이전할 수 있었다. 국내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걸핏하면 국가경쟁력을 들고 나왔다. 젠장. 이놈의 신자유주의. &lt;br /&gt;&lt;br /&gt;건이는 근육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나마 중간계층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공부를 하기에도 근육이 부족했다. 부족한 집안사정에 힘써 공부하려해보았지만 눈만 튀어나왔다. 노동자의 아들들은 눈도 좋았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체력도 있었고, 허리 근육도 좋았다. 하긴, 노동자 집안은 노동자 집안끼리 결혼하는 거니깐.&lt;br /&gt;&lt;br /&gt;건이의 여자친구는 건이보다 훨씬 많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건이의 여자친구는 스스로 쌀포대를 옮길 수 있었고, 탈곡을 할 수도 있었고, 밥을 지을 수도 있었다. 가진 건 돈밖에 없는 건이네 집에서 쌀을 살 때마다 지겟꾼에게 고개를 조아려야하는 상황과는 달랐다. 가진건 돈밖에 없는 건이가 평생 돈놀이나 해야하는 것과는 달리 건이의 여자친구는 하고 싶은 건 다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건이는 10미터만 걸으면 숨가빠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주변 사람들은 신나게 뛰어다녔다. 젠장. 나도 근육만 있었더라면 튼튼한 두 다리로 뛰어다니며 폼나게 데이트했을텐데.&lt;br /&gt;&lt;br /&gt;건이라고 해서 근육을 키워볼 요량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근육을 키우기 위해선 근육이 필요했다. 헬스클럽들은 왜 그런지 항상 2층에 있었다. 몇몇 빨갱이들은 헬스클럽이 항상 2층에 있는 건 구조적인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2층이라고 해서 못올라갈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근육없는 집에서 태어나 어찌어찌 2층에 올라갈만한 다리근력을 키우고 쇳덩이를 열심히 들어 결국 근육을 키운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lt;br /&gt;&lt;br /&gt;(다음에 계속)</description>
			<category>소설</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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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17#entry1317comment</comments>
			<pubDate>Sun, 22 Jun 2008 13:54: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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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다재다능함의 신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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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br /&gt;나는 &quot;다재다능함&quot; 역시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어떤 사회에서는 한 가지 밖에 모르는 외곬수로 평가받는 어떤 한 인물이 또 다른 사회에서는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평생 시계에만 관심을 가졌던 사람을 생각해보자. (사실 시계에&#039;만&#039;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우리 사회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지구에서 시계 외곬수였던 이 사람이 시계별에 갔다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lt;br /&gt;&lt;br /&gt;저 사람은 손목시계에 대해서도 정통한데, 괘종시계에까지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군. 저 사람은 시계의 역사도 잘아는데, 시계 수리까지도 잘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lt;br /&gt;&lt;br /&gt;어디 시계 역사와 시계 수리에만 정통한가요? 저 친구는 시계 디자인도 직접 한대요. 젠장! 세상은 불공평해. 누구는 저렇게 다재다능한데, 나 다빈치가 잘하는 거라고는 &quot;비시계학&quot;밖에 없군.&lt;br /&gt;&lt;br /&gt;(사실 손목시계, 괘종시계, 시계역사, 시계수리, 시계디자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언어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슷한 표현을 쓰는 것이지만 시계별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 각각은 요리와 악기연주, 역사학과 증권투자만큼이나 떨어져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의 요리, 악기연주, 역사학, 증권투자들은 &quot;실과&quot;과목처럼, &quot;가정학&quot; 분야처럼 뭉뚱그려져 &quot;비시계학&quot;이라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앞의 예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의 다른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같은 사회에서조차 사람마다 다재다능함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사람마다 분류의 resolution이 다르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그러니까 사람/사회마다 분야의 구성 체계에 대한 밴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 밴드가 주름잡힌 양상이 제각기 다르다. 이를테면, 시계별에서는 시계분야의
밴드가 죽 늘어나 있고, 다른부분들은 주름잡혀 -- 수축되어 --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사회의
밴드에서는 굉장히 폭넓은 밴드폭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사회의 밴드에서는 매우 좁은 밴드폭을 가지고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요약하자면, 다재다능함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가치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삶</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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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ulfide.minamza.net/1316#entry1316comment</comments>
			<pubDate>Sun, 22 Jun 2008 13:49: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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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은 디자인</title>
			<link>http://sulfide.minamza.net/1315</link>
			<description>&lt;blockquote&gt;이OO (lsy****) &amp;nbsp; &amp;nbsp; &amp;nbsp;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욕을 먹는 한국 건물로 종로 삼성중공업 빌딩이 떠오르는데, 멋부린 이 빌딩과 그냥 상자곽 같은 빌딩, 예컨대 광화문 교보빌딩을 비교했을 때 건축 전공자 입장에서 뭐가 더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lt;/blockquote&gt;* 어느날 들어온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lt;br /&gt;&lt;br /&gt;제가 건축 전공이긴 합니다만, 이런 쪽은 딱히 제 전공이 아닙니다(뭐 완전히 아니라고 말하기는 또 그렇지만..). 그러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lt;br /&gt;&amp;nbsp;&amp;nbsp; &amp;nbsp;&lt;br /&gt;&#039;좋은&#039; 디자인이냐 아니냐를 말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차원의 평가가 수행되어야 합니다. 우선 상용이형이 얘기하는 &#039;멋부린 빌딩&#039;과 &#039;상자곽 같은 빌딩&#039;은 건물이 서 있는 맥락에서 건물을 &#039;들어 올리고&#039;, 사용자를 &#039;털어 낸 뒤&#039; 그 건물의 &#039;아름다움&#039;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디자인이냐를 평가하는 매우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스의 상자곽은 시저 펠리의 교보빌딩과는 꽤 다른 차원이고, 라파엘 비뇰리의 종로 삼성빌딩보다 선호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이런 부분의 평가는 굉장히 작은 부분이라고(이어야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게 아름다움을 강조한다손치더라도 말입니다.&lt;br /&gt;&lt;br /&gt;그것이 숲속에 홀로 서있지 않는한, 도시 속의 건물들은 도시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별적으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도시 속에 늘어놓아져 있다고 해서, 그 도시가 아름다워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계단과, 아름다운 창과, 아름다운 기둥과 아름다운 지붕을 모아놓으면 아름다운 건물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도시들의 도시 풍경을 생각해보면 그 풍경 역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뽐내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유난스럽게 디자인된 건축물이 없이도 각각의 건축물들이 전체 분위기를 잘 따라주고 있다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lt;br /&gt;&lt;br /&gt;물론 가끔 하이라이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가 하이라이트가 되겠다고 나서서는 곤란합니다. 건축가들은 대개 건방진 탓에, 자신의 건물이 하이라이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칠은 필요한 곳에만 해야 금빛으로 빛나는 거지 아무데나 다 금칠하면 금칠이 그냥 노란칠이 되고 맙니다. 전체 그림도 어수선해지고요. &lt;br /&gt;&lt;br /&gt;라파엘 비뇰리는 서울에 와보고는 별다른 legible한 시각적 질서나 따라야할 기준 같은 것을 못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게 있었다면 맥락을 잘 준수해주느냐, 아니면 금칠이 되느냐에서 좀 갈등을 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른바 거장이라는 사람들은 맨날 금칠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런게 잘 보이지도 않았고, 문화적 역사적 맥락도 잘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작심을 하고 돌출을 시도했습니다. 잘 보면 종로타워는 다른 건물들과 줄이 안맞고 혼자 한발 앞으로 튀어나와있습니다. &lt;br /&gt;&lt;br /&gt;그러면 성공적으로 금칠이 되었느냐.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혼란을 더해준 꼴이 되었죠. 그 상황에서 필요한 액션은 시각적 질서를 못찾겠으니 솔로잉해야겠다가 아니라, 시각적 질서를 찾는 시발점이 되는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도시의 모습이라는 것은 동태적입니다. 지금 당장 어떤 질서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건축가는 어떠한 질서가 부여될 것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을 가꿔나가야할지 고민했어야했고, 그 질서를 따라올 수 있을 만한 그런 것으로 보여주었어야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당시의 종로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lt;br /&gt;&lt;br /&gt;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아름다움은 디자인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 평범한 물건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쉽게 떠오르는 것은 필요한 기능들을 잘 충족시켜줘야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다른 것처럼, 예술가와 디자이너도 다릅니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로서의 행동은 (특정한 디자이너가 가끔 예술가로 행동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을 보고 저것이 디자이너의 행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그 디자이너의 예술가로서의 행동입니다) 필요한 기능의 충족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의뢰한 사람에 대한 책임입니다. 그리고 건축가들에게 전문직 라이센스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 책임을 불성실하게 이행했을 경우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lt;br /&gt;&lt;br /&gt;(가위나 아이팟, 자동차는 시제품을 만들어보면 그만입니다. 건축은 시제품을 만들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축소모형이 있지만 그것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럴거라는 예측을 하게 해주고 그 예측도 훈련된 상상력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힘들 따름입니다. 그리고 잘못 디자인된 가위나 아이팟, 자동차는 안팔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건축물은 완성되는 순간에 이미 팔려있습니다. 임대라는 재판매는 안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안되고 방치된다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아이팟이 맘에 안들면 버리고 딴 거 사면 되지만 건축물은 &#039;버리기&#039;가 힘듭니다. 비싸기도 하고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대단한 자원 낭비입니다. 그리고 보기 흉한 아이팟은 서랍에 넣어놓으면 그만이지만 건축물은 안보이는데 치워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건물의 유리벽이 밖으로 떨어져나가기라도 한다면 큰 위험입니다. 그래서 책임은 중요합니다.) &amp;nbsp;&lt;br /&gt;&lt;br /&gt;디자인의 기능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한 안전의 차원은 아닙니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039;쾌적&#039;하게 충족시켜줘해야합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디자이너는 고객에게 그것을 주의깊게 설명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039;날 썼다는건 그런걸 감수한다는 거 아니겠어?&#039;라고 나와서는 안됩니다. 고객은 그 자신이 감당해야할 &#039;감수&#039;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객 개인의 선호에 따라 비기능적이고 불편한 것을 디자인해줄 수 있지만 그것은 &#039;합의하&#039;에만 가능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매안하면 그만인 그런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의 디자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고객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lt;br /&gt;&lt;br /&gt;디자이너란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고 servant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artist냐 servant냐 둘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servant가 차라리 낫습니다. artist이기를 원한다면 디자이너를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실제로 일하다보면 artist의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연히 고객이 왕이고 디자이너는 대개 힘이 없기 때문에 (게리는 예외적인 케이스입니다) 별로 강조하지 않아도 servant가 됩니다. 물론 완전히 수동적인 servant가 된다면, 즉 고객이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별로 해야할 것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무시한다면 servant보다 더 나쁩니다. 물론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맞추어주기 위해 고객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무시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lt;br /&gt;&lt;br /&gt;아름다움과 기능, 이 두 가지에 대해 지금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차원을 더 언급해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오래전,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세가지 중요한 요소를 firmitas, utilitas, venustas, 즉, 견고함, 유용함, 아름다움으로 파악했습니다. 저는 견고함과 유용함을 &#039;기능&#039;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비트루비우스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만, 저는 &#039;합의&#039;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벌어집니다. 건축가와 일반인들(사용자)의 사이에서, 그리고 사용자들 자신의 사이에서 말입니다.&lt;br /&gt;&lt;br /&gt;근대 이전, 과거의 사회는 지역별로 꽤나 homogeneous했습니다. 대개 세계관도 같았고, 가치관도 은근히 비슷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이냐,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이냐에 대한 판단이 오늘날처럼 heterogeneous하지는 않았습니다. 건축가와 일반인들은 대개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물들은 그것이 지어져오던 방식대로 지어지면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 지어져오던 방식이라는 것은 오랜 동안의 시간의 테스트를 거친 그런 것이었죠. 물론 그 시대, 그 지역의 상황에 맞는 그런 것이었고 억압적인 요소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039;문제&#039;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어져 오던 방식으로 지어져오던 건물들은 사람들에게 잘 이해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백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이동성이 대폭 증가하고, 사회가 다원화되고,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는 오늘날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슬람 집단거주지 길 바로 건너편에 크리스천 집단 거주지가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입니다. 어떤 것이 이 지역의 가치인지 하나로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전문직들이 autonomy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고 서로 교류하며, 이것을 통해 별도의 관점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되니 전문직과 laypeople사이의 합의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laypeople끼리의 합의가 어려워지는 상황 위에 얹혀 집니다. consensus 문제가 이중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납니다. 전에 없었던 유형들의 건물이 요구되는거죠. 철도역사, 오피스, 백화점 이런 것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입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상황에서 근대 건축가들은 선지자적 태도를 취합니다.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 같은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해 이상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은 대개 합리성의 무늬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에 따라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건물들에 대한 전범을 탄생시켰고, 그것들을 작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유형의 건물들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건물유형들을 바꾸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것은 &#039;희망찬 근대&#039;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한 특성입니다. 이것은 꽤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039;합리적&#039; 접근은 사회의 특정한 요구와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죠. 근대가 원하는 인간에 적절한 &#039;그릇&#039;을, &#039;외피&#039;를 제공해준 겁니다. &lt;br /&gt;&lt;br /&gt;그러나 얼마 안가 회의가 발생합니다.&amp;nbsp; 우선 첫번째로 그들의 이상적인 비전이 가해졌고 (합리성 기획의 일련의 실패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두번째로 사람들이 잘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이게 서로 다른 두가지라기 보다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근대적 인간의 &#039;주조&#039;를 거부하는 힘은 여전히 남아있었던 거죠. (이런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건축가들은 선지자 행세를 많이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039;위대한 영웅적 근대 건축가&#039;들의 영향이 그렇게 컸던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lt;br /&gt;&lt;br /&gt;선지자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복잡해져가는 세상에 universal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사용자간의 consensus 문제에 대한 대응) 이것에 따라오라고 손짓하였으나(건축가-사용자 consensus에 대한 대응) 잘 안됐습니다. 이것이 숙제로 남겨진 상황입니다. 복잡하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건물들이 어떤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 그리고 점차 벌어져가는 건축가-사용자간의 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즉 건축가가 만들어낸 건축물이 어떻게 해석될 것이냐)의 문제말입니다. 이것은 비트루비우스의 시대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던 문제였습니다. 특정한 용도의 건물은 특정한 모양으로 특정한 사용방식을 가지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lt;br /&gt;&lt;br /&gt;그러나 오늘날은, 비뇰리의 삼성타워를 보면서, 삼성동 소재 리베스킨트의 현대산업개발 사옥을 보면서 저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건축가 역시 그것을 고민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건물이 어떤 의미로 읽힐지, 또는 읽혀야할지, (또는 사용될지, 사용되어야할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건물이라는 텍스트는 어떠한 컨텍스트 속에 놓이게 되는지, 또는 어떠한 컨텍스트를 만들어내게 될지 주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lt;br /&gt;&lt;br /&gt;물론 어떤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물이 통상의 방식으로 읽히지 않기를, 전체 컨텍스트 속에서 이질적인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039;예술&#039;은 &#039;금칠&#039;입니다. 항상 요구되는게 아니란 말이죠. 세상 사람들은 완전히 분절된 소설을 읽기보다는 대개는 잘 조직된 소설을 읽기 원합니다. 가끔 그런 소설의 중간에 뭔가 이질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을 수는 있겠지만요. 그리고 도시라는 소설은 읽기 싫으면 읽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 살아가야하는 그런 곳이니 야심은 자제 좀 해야합니다. &lt;br /&gt;&lt;br /&gt;정리하면, 디자인에 대한 판단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기능 충족의 여부, 그리고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에 대한 해석을 포괄하며 이때 판단은 사용자의 입장(직접 사용자든 그것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이이든)에서 이루어져야하는 것이 예술가가 아닌 전문직으로서의 책무를 잊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상자곽이냐 멋부린 디자인이냐만으로는 판단하는 프레임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판단을 하려한다면, 나머지 부분들은 제 경험으로 판단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용자 평가는 해봐야할 것 같네요. &lt;br /&gt;&amp;nbsp;&lt;br /&gt;&amp;nbsp;이상입니다.&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기타</category>
			<author> (y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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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Jun 2008 07:37: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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